마지막 예비군 훈련

전역한지 7년 가까이 지났다.
9월 25일에 마지막 6년차 예비군 훈련을 다녀왔다.
1월에 전역해서 예비군 훈련을 1년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굉장히 억울했다.
예비군은 빠른 없나?
억텐 듀오와 연구실 간판
예비군 훈련 전날, 마침 차량 정기 점검 시기가 도래했었다. 차량 점검과 예비군 훈련을 한 큐에 끝내고 싶어서 한 참 고민하고 있었는데, 옆에 있던 연구실 간판 유겸이가 보였다. 갑자기 한석봉 어머니가 스쳐갔다. 나는 예비군 훈련을 할테니, 너는 차량 점검을 맡겨보겠느냐. 유겸이는 두둑한 알바비에 흔쾌히 수락했다. 나라도 이 정도 알바비라면 연구 제치고 했을 것 같다. 조금 아깝다… 이왕 베푸는 김에 점검 전후에 남는 시간 동안 내 차를 타고 놀러다니라고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억텐 듀오가 부쉬 속 렝가처럼 급발진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놀러갈 생각에 흥분한듯 보였다. 그에 반비례하여 나는 조금 우울해졌다. 내가 훈련 받을 동안 그런 재밌는 것들을 한다고?
그 날 밤 같이 나오면서 찍은 위의 사진. 정말 신나보이는 두 렝가와 연구실 간판이 보인다.
급박한 상황에도 사진 찍고있는 인스타충
아침 7시, 일찍 일어나 예비군 훈련 갈 준비를 했다. 새벽 5시 쯤 잠드는 나에게는 꼭두새벽에 일어나 준비하는 것과 같았다. 정말 고통스러웠다. 그래도 이게 마지막이니까…
준비를 마치고 유겸, 영채, 고운을 태우러 학교로 출발했다. 어? 근데 찍히는 시간이 심상치 않았다. 9시 입소인데 9시 1분에 훈련장도 아닌 학교를 도착한다고? 분명 나의 시간 계산은 틀리지 않았었다. 계획대로라면 8시 40분까지는 학교에 도착하는것이었다. 뭔가 잘못됨을 감지한 나는 가능한 섬세하면서도 빠르게 주차장을 빠져나와 도로의 흐름에 합류했다. 그 때 알았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이 시간에 출근한다. 아차차…
출근 시간이 미국 시간에 동기화 돼있던 나는 러시 아워인 것을 몰랐던 것이다.(미국 가본 적 없다.)
다행히 훈련장에서 바로 만나는걸로 계획을 수정하고 시간내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신난 세 명과 우울한 한 명, 그리고 영문도 모른채 도와준 한 명
갑작스런 계획 변경에도 힘든길을 어떻게 왔을지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사실 구라지만 있었다 치고..
그런 조급한 상황에서 도와준 정균. 우연히 유겸이와 같이 있었던 유정균이라는 친구가 본인 차로 빠르게 태워다줬다고 한다. 정균이랑은 두 번째 본 사이지만 정감이 많이 간다. 그래도 아직은 어색하다.
내가 열심히 훈련장으로 향하던 중 이 네 명은 나보다 먼저 도착했다. 훈련장을 둘러보던 유겸이 원래 예비군들은 군복 풀어헤치고 자유분방하게 돌아다니는데 이 날 사람들은 깔끔하게 잘 하고 왔다며 칭찬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등장한 나. 사진에서 보이듯, 유겸이가 묘사한 그대로의 인물이 등장하며 진짜 예비군은 이렇다는 걸 증명해버렸다.
차에 있는 카메라들을 사용해도 된다고 하고, 나는 훈련장에 입소했다. 극도로 신나있는 이 친구들이 라이카로 많은 사진을 찍어놓았었다.
열받게 하기 장인(물리)
고운이를 여러번 찍으며 느끼지만 포즈가 정말 열받는다. 이 사진도 그랬다. 왜 일까? 아무튼 정말 열받는다.
열받게 하기 장인(정신)
연구실에서 가장 열받게 하는 인물. 평소하던 행동들과 전혀 매치되지 않는 새침한 표정이 정말 너무 열받는다. 합법적인 응징이 가능하도록 친동생이었으면 좋겠다.
열받는 듀오(물리+정신)
포즈와 표정을 사용해 직접적으로 열받게 만드는 고운과 말투와 가면(페르소나)을 사용해 간접적으로 열받게 만드는 영채의 콜라보레이션. 참기 너무 힘들다.
10분 동안 기다린 횡단보도를 안건너고 사진 찍고 있는 모습. MZ세대의 성격을 잘 담고 있는 작품
차량 점검을 맡기고 카페로 이동한 중 횡단보도를 10분이나 기다렸는데도 초록불로 바뀌지 않았다고 한다. 알고보니 첫번째 사진 속의 버튼을 눌러야만 작동하는 횡단보도 였는데, 몰라서 무작정 기다렸다고 한다. 그러고 신호가 바뀌었음에도 인증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여러모로 열받는다. 다른 관점으로는 타인의 관심에 의존적인 일부 MZ세대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길이나 건넜으면 좋겠다.
이 때 나는 산을 타고 있었다.
깔깔 듀오. 항상 시끄러운 편.
둘이 있으면 뭐가 그리 즐거운지 하루종일 웃고있다. 이 날은 더 심했다고 한다. 공사장 보다 높은 데시벨 측정이 가능했을 것 같다.
도시 속 보호색 처럼 가방과 깔맞춤한 영채의 니트가 인상적이다. 영채의 아웃사이더 같은 성격이 보이는 대목이다.
이 때 나는 바닥에 엎드려 총을 쏘고 있었다. 표적지가 조금 오버랩되는듯 하다.
조작된 웃음을 짓는 영채(좌)와 유에민쥔의 작품(우)
영채는 이렇게 웃지 않는다. 영채는 창문 닦는 소리를 내며 모든 치아가 드러나게 웃는 편. 즉, 이 사진은 조작되었다. 조작, 과장된 웃음, 억지스러움 등이 유에민쥔의 작품을 떠오르게 만든다. 정말 똑같이 생겼다.
고운의 작품들
여러 물리공격으로 열받게 만드는 고운이지만, 찍어온 사진의 작품성은 정말 좋다고 생각했다. 사진에 소질이 있어보인다. 그래도 열받는건 여전하다.
그로부터 이틀 후, 7년만에 산을 타며 훈련한 탓에 이제서야 몸이 완전히 회복됐다. 아니 왜 갑자기 예비군 훈련이 빡세진거지? 오랜만에 온 몸이 녹초가 됐었다. 하지만 이젠 무슨 상관이람. 국방력 증진을 위해 더 강화돼야한다고 생각한다. 사진은 아무 관련없지만 현수와 유겸의 사이가 좋아보였다. 조금 질투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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