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그리고 미래의 일

최근 인공지능 기술 발전이 빨라지면서 인류를 도와줄 뿐만 아니라 인류를 대체하는 분야까지 생겨났다. 알파고와 바둑, 생성형 AI와 그림 등이 그렇다. 이렇게 기계가 사람이 할 일들을 위협하면서, 대중적으로 일자리를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급증하고 있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일을 한다는 것은 돈을 번다는 것이고, 돈을 번다는 것은 살아간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해야할 일이 갑자기 사라져버린다면 어떻게 살아가야할 지 막막해져 버리는 것.
정말 이런 우려처럼, 해야할 일이 사라지고 생계가 파탄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다. 이 글을 쓰게된 이유이다.
나를 포함한 수 많은 인공지능 관련 종사자들은 사진과 그림의 관계를 인용해 설명한다. 과거 그림은 현실적인 묘사가 작품성의 척도였다. 서양화에서는 대상의 특징과 느낌들을 잘 살리는 것이 중요했고, 동양화에서는 대상을 섬세하고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이 중요했다. 카메라가 발명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화가들을 두려움에 빠뜨렸던 카메라의 등장은 어떤 그림보다 대상을 정확하게 특징을 살려 묘사했다. 그러면 분명하게도 그림 업계는 사라졌어야만 했다. 다행히도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현실주의 화풍이 추상주의 화풍으로 변화했고, 대중은 열광했다. 그렇게 그림 업계는 또 다른 국면을 마주했을 뿐 사라지지 않았다.
또 다른 중요한 사실은 현실주의 화풍에서 추상주의 화풍으로 바뀌는 데에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현실주의 표현을 대체해버린 ‘사진’에 대항하기 위해 돌파구를 고민하고, 해결 방안들을 마련하고, 동작하는 지 확인해야 했을 것이다. 카메라로는 표현하기 어려웠던 감정, 감성, 상상력을 자극하는 방법이 먹혀 들었을 것이다.
인공지능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인공지능은 분명 인류가 해왔던 수 많은 일들을 지금까지 존재했던 그 어떤 기술보다 빠르게 대체할 것이다. 그렇게 대체된 업계는 저항없이 사라져 버릴건가? 분명하게도 그렇지 않다. 분명하게도 인공지능이 하기 힘든 부분을 찾아 새롭게 확장할 것이다. 다만 확장할 수 있도록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우리가 두려움을 느끼는 것도 충분한 시간이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마치 두드려보고 건너야할 돌다리를 등 떠밀려 건너듯 불안한 것 같다.
만약 인공지능의 발전이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그러니까 충분히 대체 업계를 만들어낼 만큼의 속도라면 지금만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누군가 지금 우리들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인공지능을 빠르게 발전시키고 있는가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답하고 싶다. 인간이 빠르게 발전시키는 만큼, 통제 기술을 함께 연구하기 때문이다. 마치 방사선에 대해 알지 못해 오용되던 방사능 물질이 방사선 통제 연구를 통해 원자력 발전소로 이용되듯 말이다. 실제로 XAI(eXplainable AI)나 적대적 공격 등 인공지능 문제를 대비하기 위한 연구 분야가 있다. 이 분야들이 활성화되면 인공지능이 어떤 판단을 내린 이유나 어떤 정보에 취약한 지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면 등떠밀려 건너지만, 돌다리를 그 만큼 빠르게 두드릴 능력이 생기게 되는 것. 다만, 비관련 대중들이 기술 발전을 연구하는 사람들보다 통제 기술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지 않다. 그러면 당연하게도 연구 투자는 상대적으로 적어지고, 통제 기술 발전은 상대적으로 늦어진다.
인공지능(특히 딥러닝)을 연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런 말들을 써내려가는 게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사실은 과하게 빠른 인공지능 발전을 대비하는 연구들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이를 활성화하기 위해 XAI, 적대적 공격 등과 같은 인공지능 분석 및 통제 기술을 보편적으로 인식시켜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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